시론논단

시의 보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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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의 시는 대체로 시 한 편의 완결을 맺지 못한 채, 개성의 표출도 잘 안 되고 있음에 동의하는 이가 많을 것이다. 개성을 뒷받침해 주는 인간 보편의 정서의 표현이야말로 시의 근간이 되어야 할 줄 아는데 그러한 시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시에 있어 보편성의 획득은 쉽지 않으니, <보편 정서의 표현>은 시인이 추구할 방향이라 하겠다. 더구나, 인간의 근저에 자리잡은 보편 정서의 표출은 지난한 일이라 하겠다. 무수한 우리 시인중에 보편성을 획득했다고 할 시인이 드므니 보편성의 획득이야말로 시인 앞에 놓인 과제라 하겠다.

세계적인 시인들은 이 보편성의 획득을 통하여 불멸의 탑을 쌓았으니 우리 시인이여 분발하라! 다음은 구상(1918~2004) 시인의 보편성의 획득에 관한 글(구상의 시적성과 일고)을 덧붙여 보편성 획득의 면모를 보고자 한다.

20세기 대표적인 시인으로 평가되는 미국 출생 영국 시인 엘리어트(T.S Eliot)는 일찍이 '시는 개성의 표출이 아니라 개성으로부터의 도피'라 했는데, 문학에 있어 개성의 보편적 승화를 강조한 말로 들린다.

시인으로서의 구상은 자신의 삶의 표백을 통하여 인간 삶의 문제에 이르고 사회의 문제에 비판적으로 접근한다. 나아가 늘 초월적 존재를 인식하고 있음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한 그의 시적 표현은 여러 시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명(無明)의 백태가 벗겨지며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萬有一切)가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노상 무심히 보아오던 손가락이 열 개인 것도 이적(異蹟)에나 접하듯 새삼 놀라웁고 <말씀의 실상(實相)> 1 - 2연 악의 무성한 꽃밭 속에서 진리가 귀찮고 슬프더라도 나 혼자의 무력(無力)에 지치고 번번이 패배(敗北)의 쓴잔을 마시더라도 제자들의 배반과 도피 속에서 백성들의 비웃음과 돌팔매를 맞으며 그분이 십자가의 길을 홀로서 가듯 나 또한 홀로서 가야만 한다.

<그분이 홀로서 가듯> 2연 시방 세계는 짙은 어둠에 덮여 있다. 그 칠흑 속 지구의 이곳 저곳에서는 구급을 호소하는 비상경보가 들려온다. 온 세상이 문명의 이기(利器)로 차 있고 자유에 취한 사상들이 서로 다투어 매미와 개구리들처럼 요란을 떨지만 세계는 마치 나침반이 고장난 배처럼 중심도 방향도 잃고 흔들리고 있다.

<인류의 맹점(盲點)에서> 1 - 2연 위 시들에서 보듯 세상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으로 새 날을 맞이하고, 세상살이의 어둡고 험난함을 인식하는 비판의식과 그 극복의 전망은 우리가 잊고 지내기도 하지만, 인간이 찾아야 할 영혼을 부러 일으킨다.

인용시만이 아니라 도처의 시편에서 그가 삶의 성찰과 현실 인식 그리고 인간의 영원의 문제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잊기 쉬운 또는 간과하기 쉬운 내면을 일깨우는 일로 보인다.

또한 연작시 <강>이나 <까마귀>의 근저에도 그리고 자전적 시집 <모과(木瓜)옹두리에도 사연이>(1984)에서도 그 시적 여정과 아울러 인간의 근원적 문제를 늘 제기하고 있다. 시적 표현에 있어서 그의 시는 일반적인 시와 달리 다소 진술적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으나, 시 한편 전체를 보면 그것은 진술이 아니라 대체적으로 비유의 덩어리로 보인다.

차분히 그의 시를 음미하면 감동의 물결이 인다. 그러한 면에서 그는 이 땅에 남을 시를 쓰고 있다고 본다. '말의 화장실'이나 '무정란의 시'는 시가 아니라 넋두리이다. 그가 말하는 바, 말의 등가량의 진실이 없이 감동은 없으며, '존재의 집'인 언어가 사물에 대한 천착 없이 우리의 정서나 사상이 하나가 될 수는 없다.

<인류의 맹점(盲點)에서>, <가장 사나운 짐승>은 인류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이는 그의 보편적 세계의 추구에 대한 한 증거이다. 그가 <홀로와 더불어>서(序)에서 '어디까지나 인류의 보편적 차원에서 시를 써 왔다'고 함을 보이는 것이다. 필자가 보아온 바, 그의 시는 국내의 폭넓은 독자에게 쉽게 그리고 깊이 있게 감동을 주고 있고, 80년대 중반 불역(拂譯) 이후 꾸준히 세계 여러 말로 번역 소개되어 그들 독자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우리의 인식 세계를 잘 표출함은 물론 번역을 통해서도 인류의 보편성을 획득함이고, 이것은 인간의 근본적 문제를 제기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것은 그의 인식의 넓이와 깊이에 기인하는 것으로 국내외의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은 다시 말하거니와,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보편적 의식을 일깨운 것이라 하겠다.

인간의 보편적 정서와 사상을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는 이러한 작업에 익숙해져 있고 다시 말해 삶의 자연스런 부분으로 드러나며, 이는 한국시사에서 보기 드문 시적 성과의 하나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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