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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우의 시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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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인식과 위기의식의 시적 진실


김 송 배
(시인.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들어가면서-상황 설정
현대시의 요즘 경향은 대체로 자아(自我)를 인식하는 지적 성찰(知的省察)을 전제로 한 상상력의 재생이 주축(主軸)을 이루어서 현실적인 갈등이나 고뇌들이 화해하고 새로운 인생관이나 가치관 형성의 교시적(敎示的)인 언어로 표출(表出)되는 경우를 흔히 대할 수가 있다.
우리 시인들은 이처럼 실생활(real life)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자신의 체험에서 획득한 상상력이 창조적인 시적 진실로 승화할 때 그 작품의 주제나 표현 언어에서 감동하는 희열(喜悅)은 필설(筆舌)로 형언(形言)키 어려울 것이다. 
여기 이종우 시인이 상재하는 제7시집『임진강을 넘어서』를 일별하면서 이와 같은 상념을 제시하는 것은 그의 작품 전체에서 풍겨나오는 향내가 우리들 인간의 애환(哀歡)이 시적 모태(母胎)로서 누구에게나 공감할 수 있는 인간사(人間事)의 문제들을 심도(深度) 있게 형상화하고 있어서 우리 인간의 인식과 의식을 통해서 새로운 메시지를 적시함으로써 시적 지향점에 쉽게 접근하게 하고 있다.
이종우 시인은 그동안 시집으로 「사랑과 죽음사이」(1975) 「환상이 실재될 때」(1998)「이 시대 살아있는 시를 위하여」(1995) 「참회의 뜨락」(2000)「시는 나의 살음Poem's my Live」(2003) 「세월을 강을 바라보며」(2007) 등 여섯 권을 상재하여 그동안 우리 문단에 많은 관심을 모은 바가 있다.

 새로운 도약을 위하여 쓰거니와, 시가  추구하는 세계에는 철학과 소명(召命)이 있어야 할 것이다. 철학을 통하여 보편성을 지향하고, 소명을 통하여 맑은 샘물 같은 시어를 보여 그러한 정신을 표출해야 할 것이다.
--중략--
시는 삶의 여가에서 나오는 한류(閑流)가 아니다. 치열한 삶의 문제에 고민하고, 존재의 탐구(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에 대한 깊이 있는 세계로 나아갈 때에 시는 생명력을 얻는다.

그는 ‘자서’에서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철학과 소명’의 의식을 가장 중요한 시적 덕목(德目)으로 설정하고 ‘치열한 삶의 문제에 고민하고 존재의 탐구’를 통해서 시의 생명력을 강조하는 그의 진실을 이해할 수가 있다.
한편 그는 이 시집에서 문학론적인 산문도 다수 수록하여 독자들에게 문학의 접근과 이해에 도움을 주고 있는데 하나의 시론집의 역할도 충분히 감당할 것으로 사료(思料)되어서 그가 지향하는 문학의 구조나 그 정신을 통한 문학인구의 저변확대에도 기여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다.
대체로 그가 칼럼이나 산문형식으로 발표하는 내용들을 일별해보면 ‘문학적 자존’, ‘시의 보편성’, ‘시의 이해’, ‘시로의 여행’, ‘시의 논리’, ‘문단 풍토와 문인 배출문제’ 등 현재의 문단과 문학에 대해서 예리한 담론으로 현실 상황을 비판하거나 개선 방향을 제시하고 있어서 우리들을 공감케 하고 있다. 
또한 김소월과 김동환, 윤동주, 김남조, 김양식, 오규원, 정힌톤 시인들의 작품을 분석하여 주제의 연결성과 그 메시지가 우리들에게 제공하는 시적 진실은 무엇인가를 세밀하게 적시하고 있어서 이 또한 공감의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시간이 없다고 시 쓸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정이 메말러 서고, 게을러서다
큰 위안을 버리고서 어디서 찾으리.
좋은 친구 옆에 두고 어디서 찾으리.

지금은 전화(戰禍)가 안방에서 난리인데
시 쓰는 일이 배부른 일인지도 모른다
죽음이 오고 가는 바다의 바람은 알까나
시심을.
--「시심을 찾아서」중에서

그렇다. 이종우 시인도 ‘존재의 탐구(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탐색하기 위해서 오늘도 ‘시심’을 찾아서 분주하게 사물과 관념 사이를 왕래하고 있다.

2. ‘나’를 통한 자아의 인식구조
이종우 시인은 이처럼 ‘나’를 통한 인식구조에 깊이 탐닉(耽溺)하고 있다. 이는 자아에 대한 과거에서 생성한 상상력들이 현재의 모든 실상들과 ‘인간의 문제’가 서로 상충(相衝)하면서 빚어지는 우리 인간들의 혼란으로 재생되어 그 악순환이 지속적으로 일각(一角)에서 혼재(混在)함을 간과(看過)하지 못한다. 
그는 산문「인간의 문제 / 이중의 부조리」라는 글에서 ‘더 큰 부조리의 출현은 그러한 부조리한 인간이 엉켜사는 이 사회에서의 삶에 있다. 자식을 낳고 남부럽지 않게 살려는 욕구들이 부딪히면서 수양을 잊고 정신을 잃고 산다.’라는 현실적인 고뇌를 털어놓고 이에 대한 성찰의식을 투명하게 현현하고 있다. 

가슴이 따스한 이에게도 외로움이 있다.
기도 뒤에 다가오는 허무함이 있다.
이기에 가득 찬 동무도 있고
뜨거운 가슴 주고 싶은 헐벗은 이들도 많다.
내가 있음에 온갖 것이 존재하고 있음에
나는 또 묻노니,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고.
--「어디에 서 있는가」전문

그는 위의 작품에서 적시한 바와 같이 나는 ‘어디에 서 있는가’라는 의문에 정서의 지향성을 두고 있다. 이러한 존재에 관한 회의(懷疑)가 그의 시적 원류에 깊게 흐르고 있는 것은 그의 의식(consciousness)에서 ‘외로움’과 ‘허무함’이 상존(常存)하는 이 현실적인 고뇌가 그에게서는 ‘내가 있음에 온갖 것이 존재하’는 이유를 절감(切感)하면서 그 이유를 묻고 있다.
그는 ‘저 숲은 나의 어리석음을 잘 알고 있다. / 저 강은 나의 속좁음을 잘 알고 있다. / 아침부터 그대들을 망각하기에. // 모든 것이 헛되다고 외치기만 하지 / 허무의 자락도 못 만지며 / 무거운 아침을 맞는다.(「건강을 위하여」중에서)’는 화자의 어조와 같이 ‘어리석음’과 ‘속좁음’이 사물적인 ‘숲’과 ‘강’으로 이미지화한 대칭적인 은유의 시법에서 우리는 자아의 인식구조를 명징(明澄)하게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사는 삶을 체득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나눔도 모르고 사랑만을 그리워 했다.
이 지상의 수상한 짓거리에
눈 감고 지내 왔으나 
이제는 붉은 먼지 날리는
험한 거리를 못 본 척 못하겠느니!
인간은 사고(思考)의 동물,
나의 전신은 진화해야 한다.

가르치고 배움에 부족하여
먼 길을 떠난다. 더불어 살고
나누며 살고
진실한 사랑을 찾아서
남은 목숨을 던져야 겠다.
--「결의」전문

그러나 위의 작품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더불어 사는 삶을 체득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다. / 나눔도 모르고 사랑만을 그리워 했다.’는 그의 비장한 ‘결의’를 위한 전제(前提)가 자아 성찰로 단정하고 있다.
그는 이러한 현실적인 인간 부재의 불합리나 부도덕의 상황들을 지금까지 ‘눈감고 지내 왔으나’ 우리들이 절실하게 체감(體感)하려는 시적 진실을 위해서 ‘험한 거리를 못 본척 못하겠느니’라는 강한 어조로 그의 ‘결의’를 다지고 있다. 이와같은 인간의 심저에는 누구에게나 진선미(眞善美)를 향한 고결한 정서가 중심축을 형성하고 있지만, ‘이 지상의 수상한 짓거리’를 못 본척하는 현대인들의 심리를 잘 반영하고 있어서 그가 결론으로 적시하는 ‘더불어 살고 / 나누며 살고 / 진실한 사랑을 찾아서 / 남은 목숨을 던져야겠다’라는 어조는 우리들을 공감하게 하고 있다.

세월의 저편 아스라이 보이는 나의 언덕에
꽃이 피고 부활의 향이 오르는 꿈길에서
날으는 새와 같이 사랑의 하늘을 바라보면서
그대와 같이 사랑의 동산을 만들 수 있으랴
--「다시 한번 열정이여」중에서

이종우 시인은 ‘다시 한번 열정’을 갈망하고 있는데 이는 자아의 결단으로써 ‘세월의 저편 아스라이 보이는 나의 언덕’이라는 과거의 반추(反芻)를 통한 자성과 더불어 새로운 ‘부활’을 꿈꾸고 있다. 여기에서 주된 모티브는 ‘사랑의 하늘’이며 ‘사랑의 동산’이다.
그는 결국 ‘나’를 축으로 한 인식을 자아와 존재의 이유를 궁극적인 주제로 천착(穿鑿)하는 경향을 이해하게 되는데 이는 그가 현대인들과 현대의 문명들에 대한 다양한 갈등들이 복합적으로 생성하는 우리들의 공통된 고뇌를 그의 시정신 속에 용해(鎔解)하여 시의 본령(本領)으로 화해하는 시법을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3. 가치관 재생과 갈등의 화해
현대시의 위의(威儀)는 자의식의 동반을 통해서 작품 창조에까지 고양시키는 정신활동으로서 의미, 이미지, 리듬 등을 지닌바 감득(感得) 작용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미(美)나 진(眞)에 대한 수동적인 감응뿐만 아니라, 현대의 와서는 시대적 비평이라고 하는 지적인 역할도 적극적으로 담당하게 된다.
이종우 시인은 이러한 시적위의의 실현을 위해서 성찰과 재창조의 시적 신념은 불변하고 있다. ‘세상 바람에는 겨울 끼가 있다. / 내 몸이 아니 풀려서인지 봄은 서서히 왔다가 / 금방 사라지는 듯하다. / 화초는 화들짝 피어 지는 날을 기다리는 듯하고 / 이것이 내 마음이라면 나는 봄에도 겨울과 싸워야 한다. / 얼어붙은 마음과 싸워야 한다.(「시심을 찾아서」중에서)’는 그의 가치관을 재생하면서 ‘시심’을 통한 새로운 관조(觀照)와 병행하는 사유의 지향점이 분사(噴射)되고 있다.

새해에는 우리의 마음이 맑게 열리어 
어두운 그늘에 환한 빛으로 비추고 
거리마다 바른 양심이 차고 넘쳐 
모두가 행복한 마음의 나날이어야 하느니 

새해에는 우리가 물질의 풍요를 바라기보다
우리의 정혼(精魂)을 살찌게 하여 
이웃에게 꼭 필요하고 참으로 베풀 줄 알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보듬어야 한다. 

위의 작품「새해의 꿈」중에서 읽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새해’라는 세월의 변화와 시간성의 출발점에서 스스로 다져보는 일종의 각오가 적나라하게 적시되어 있으나 이는 개인적인 보편적 ‘꿈’이 아니라, 우리 인간들의 고질적인 갈등을 해소하고 새로운 정신(또는 시정신)과 융합(融合)하려는 창조적인 ‘꿈’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이러한 그의 소회(所懷)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고 이다.

-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아픔을 보듬어야 한다. 
- 사랑의 꽃이 뿌려지고 피어나는 나날이 되어야 하느니 
-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利他)의 불꽃을 지펴야 한다.
- 순수로 넘쳐 빛나는 터전이어야 하느니
- 공평히 살아가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 밝은 조국의 내일을 만들어야 하느니
- 즐거이 자신의 일을 다하는 / 활기찬 터전이어야 한다.
- 아직도 저 동토(凍土)에서 순박하게 사는 동포들을 위해 / 통일의 문(門) 그 빗장을 열 준 비를 해야 하고
- 우리의 의식이 거듭나고 우리의 양식(良識)이 살아나서 / 제2의 한강(漢江)의 기적으로 나아가야 하느니
- 거리마다 바른 양심이 차고 넘쳐 / 모두가 행복한 마음의 나날이어야 한다.

보라. 이종우 시인의 사유와 정서에는 이와 같은 사회적인 화합이 인본주의(humanism)의 본령을 벗어나지 않는 언어로 잠언(箴言)과 동일한 메시지를 적시하고 있다. 일찍이 영국의 비평가 리처즈는 일상생활과 정서생활과 시의 소재 사이에는 별차이가 없고 이러한 생활의 언어적 표현은 시의 테크닉을 사용하게 되어 있을 뿐이라는 말과 같이 시의 사회적인 교감이 어떤 때에는 우리들의 좌우명과 동류의 메시지를 제공하기도 한다. 
이러한 그의 주관(主觀-subject)은 자아가 주체가 되어 그가 갈구(渴求)하는 대상에 작용하는 개성적인 내용으로써 형상화한 것인데 일반적으로는 개인적인 표명(表明)의 언어가 사회성을 동반하는 시법으로 가치관을 재생하는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임진강을 넘어서
헐벗은 북녘에 햇살을 비추라
임진강 언저리 통제선을 부셔라
아, 현실은 찬바람에 서슬 퍼래서
도와 줄 나라는 없구나 그러니
우리의 힘으로 서로 만나고 만나서
임진강을 넘어서 압록까지 그래서
한라에서 백두까지 혈액을 돌게하자
둘 아닌 하나 된 우리로 살자
하나로 거듭나자.
--「임진강을 넘어서」중에서

이 작품은 이 시집의 표제시가 되는 「임진강을 넘어서」중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가 당면해 있는 통일의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고 있다. 이러한 시의 사회성은 많은 시인들이 사회적인 병폐나 부조리에 대한 교시적인 반론이나 기원을 담아서 우리들과 교감하는 경우를 흔히 대할 수 있다.
이종우 시인도 시의 사회성에 관하여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시의 사회성은 우리 인간은 고립된 상태에서 살아나갈 수가 없으며 어떤 형태로든지 서로 교류하고 집단을 이루며 사회를 형성하다보니 우리 시도 그 사회 생활에서 이탈할 수 없다. 시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사회의 현실에 직면하여 거기로부터 다양한 주제를 탐색하게 된다.
이러한 시적 상상력은 우리의 분단 현실을 이종우 시인은 국민적 화해의 차원에서 ‘둘 아닌 하나로 된 우리로 살자 / 하나로 거듭나자’라고 어조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다시 ‘우리는 하나 될 날을 위해 / 지혜롭게 경영해야 하노니 / 언 땅에서 꽃이 필 때까지 / 한 가슴으로 나아가야 하노니(「김정일 사망」중에서)’라고 민족적인 화해를 유로(流路)하고 있으며 ‘겨울의 한낮 속에서 / 아픔에 함께 떨고 있다. / 아픔은 언제 멈추일 것인가 / 이 내 몸은 곧 나으리라. / 그러나 임진각 언저리는 / 긴 세월을 아파해야 하리.(「겨울 통증」중에서)’라고 우리들의 통일 염원의 성취를 간절하게 희구(希求)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4. 위기의 자연과 기원의 해법
우리 시인들은 자연과 대하게 되면 우선적으로 친자연에 관한 서정성을 표출한다. 그러나 이종우 시인은 자연에 대해서 형용할 수 없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다. 요즘 현대시의 경향도 인본주의를 기저(基底)로 해서 자연관을 중시하는 시법으로 전환하는 경향을 많이 발견하게 한다.
현대시의 기능이 인간의 존엄과 존재의 근원을 창출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자연의 파괴와 오염은 결국 우리 인간들을 멸망시킨다는 원론적인 사유에 도달하면 자연서정보다는 위기의식을 극복하는 기원의 해법을 탐색해야 할 것이다.

가을이 오면 꽃은 노래를 한다
차가운 바람에 날려서
너는 끝으로 가지만
새로움의 시작으로 간다.

너의 흔들림은 살아 있노니
죽음의 노래를 부르지 마라
나에게 들려다오
너의 가슴 져린 숨결을

가을이 오면 너의 새 소리를 듣는다
지난 겨울이 따뜻했듯이
오 너의 모습 그 따스한 소리를 보노니
그대여 들려다오 그대 이 지상의 마지막 말을.
--「꽃의 노래」전문

이 작품에서 보면 ‘꽃’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죽음의 노래를 부르지 마라’거나 ‘그대여 들려다오 그대 이 지상의 마지막 말을’이라는 어조는 보편적인 관념의 노래가 아님을 감지할 수 있다. ‘너의 끝’과 ‘너의 흔들림’ 등이 전해주는 이미지나 그 속에 내포(內包)되어 있는 메시지는 우리 인간들에게 경종(警鐘)을 울려주고 있다.

마을 뒷산에 스며 살던 음성들은
하늘에 닿은 건물들에 보이지 않고
해맑이 모래는 빛나 멱감던 시내는
시커먼 오수로 물들어

배부름이 더러움을 부르는 시대
그리고 치워야 하는 뒤엉킨 시대.
고향이 없는 아이들은 거친 거리에서
속 빈 마네킹을 사람으로 알고 산다.

헐벗었어도 옛날이 만지고픈 석양 앞에서
내일의 해를 걱정하느니
마을 뒷산에 살던 음성이여
귀를 뚫고 마음을 뚫고 오시라.
--「실종」전문

이 작품에서도 자연의 위기는 더욱 심각하다. ‘멱감던 시내는 / 시커먼 오수로 물들’고 ‘고향이 없는 아이들은 거친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다. 이처럼 ‘실종’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속 빈 마네킹을 사람으로 알고‘ 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시작 노트’를 통해서 ‘이 땅에는 신령한 말씀이 스며 있는데 / 우리는 여기에 귀 기울이지 않고, 문명을 / 앞세우거나 인간의 욕심을 내세워 우리를 / 병들게 하고, 인간다움을 잃고 있다. 그리하여 실종된 말씀의 진리와 그 바로잡음을 / 간절히 바라고 있다.’라고 명시함으로써 그가 평소에 간직한 인간과 자연에 대한 ‘실종’의 모티브가 생생하게 살아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종우 시인의 의식의 흐름은 작품「은하수를 찾아서」에서 ‘은하수 같은 사람들도 사라졌나 보다 / 삭막한 살이에 쳐다 볼 하늘이 없으니 / 갈 길 잃은 나그네만 서성이는 이 지상에서 / 은하수를 찾아서.’라거나 작품 「웅덩이 앞에서」에서 ‘구름 같은 살이 / 구름밭에 내 생명의 씨를 뿌려 / 허무의 덫을 벗어나려나’ 그리고 작품「잃어바린 고향」에서 ‘ 아, 오수(汚水) 흐르는 개천 / 성냥갑 아파트 / 거리를 메운 낯선 이들 / 농약에 찌든 벌레가 득실거리는 곳,’ 등의 어조가 자연 파괴의 아픔을 잘 적시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의 자연에 대해서는 그가 표출하는 화해나 극복의 의지는 없는 것인가. 그는 이러한 화해의 언어는 ‘저녁무렵 서녘에 붉은 구름 서리고 / 한강의 다리는 수많은 달을 쏟우네 / 한강은 살아서 물고기들이 펄덕이고 / 쓰레기 산은 짙은 녹음으로 다가오네.(「한간의 일모(日暮」중에서)’와 같이 한강의 물고기가 살아서 펄덕이는 세계가 도래(到來)하는 것을 예감하고 있다.
이제 여기서 이종우 시집 『임진강을 넘어서』에 대한 읽기를 마무리해야겠다. 그가 이 시집을 통해서 대체로 ‘나’를 통해서 자아를 인식하는 점에 많은 작품을 할애하고 있으며 또한 거기에서 재생된 존재의 문제는 바로 새로운 가치관의 형성으로 현실적인 갈등요인을 화해하는 것과 자연의 위기를 절감하면서 그 기원의 해법을 구현하려는 그의 정서를 이해하게 한다.
이종우 시인은 휴머니즘의 근본 원류를 상실하지 않기 위해서 자연 서정을 통해서 사회적인 비평을 적절하게 구사하는 시법을 읽을 수 있는데 ‘우리네 인생 끝. / 늘 기도의 끝은 알 수 없는 / 의문의 덩어리로 남는다. / 우리네 존재여, 가을을 보내며 / 너를 찾는다.(「가을을 보내며」중에서)’는 성찰과 동시에 현실을 수용하는 서정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가 다시 ‘밥 없이는 살아도 / 나는 시 없이는 못산다(「시와 밥」중에서)’는 비장한 각오와 함께 작품「낙엽을 다시 만나며」 「만추의 여행」 「낙엽」 「낙엽을 밟으며」등 자연서정에도 몰입하고 있어서 그는 천성적으로 서정시인임을 감지하게 된다.

늘 보는 청산아
나는 왜 닮지를 못하뇨

그대의 깊은 속에
잠기고 싶은데

청산아, 왜 자꾸 멀어지고
그리워만 하는가. 

이 작품「청산아」전문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순수성과 순박성이 동시에 현현되는 함축된 기원의 의지가 그의 솔직담백한 시적 진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청산을 닮지 못하는 속인(俗人)에 대한 자괴지심(自愧之心)의 진솔한 발현이다.
일찍이 영국의 시인 T. S 엘리엇은 이미 시의 세계로 들어온 철학이론은 붕괴되는 일이 없다고 했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볼 때 그것이 진리이건 아니면 오류이건 이런 것은 이미 문제가 되지 않으며 의미하에서는 그 진리가 영속성을 유지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우리가 작품 속에 거창한 철학을 투영하지는 않더라도 인생의 문제와 가치관의 지향성이 작품에 가미가 되어야 지적자양분이 함축된 의미(주제)를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으며 그 시인의 혜안(慧眼)으로 창조된 인간의 진리라는 숙명적 과제에 대한 해법을 탐구하는 시정신으로 정립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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