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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록파 시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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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년대 초기시를 중심으로


목차

<국문요약>

머리말
1. 연구의 목적및 의의

2. 연구사 검토 및 문제 제기

3. 연구 범위와 방법

세 시인의 초기시의 양상
1.조지훈의 시세계
시적 변모와 관조의 미학

2. 박목월의 시세계
개인의식의 상승과 순수서정

3. 박두진의 시세계 
화해의 세계로의 지향와 기다림의 미학

세 시인의 작품에 나타난 시적 특질 비교
1. 자연 수용의 양상

2. 시적 자아[서정적 자아]의 분석

3. 현실인식의 문제

청록파의 시사적 의의

맺음말

<참고문헌>
<영문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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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요약>

본 연구는 1940년대 시문학의 양상을 고찰하는 한 부분으로, 이른바, 청록파 세 시인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의 초기시의 세계를 개인의 서정과 사회나 현실과의 관계속에서 살피고자 했다.
아울러서 그들의 주요 테마의 비교를 통해 개성을 확인하려 하였으며 그러한 토대 위에 시사적 의의를 규명하고자 했다. 
조지훈의 초기시는 생활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 다양한 시적 변모를 보이면서도 관조의 미학이 흐르고 있다. 박목월은 개인의식의 상승에 그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한 서정세계, 이상향을 구축하고 보편적인 감동의 세계로 이끌었다. 박두진은 자연과의 친화 속에서 불화의 현실을 인식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기독신앙을 바탕으로 화해의 세계, 이상향의 세계를 기다리고 있다.
'자연 수용의 양상'에서는 그들이 불화의 현실을 인식하고 자연의 관조와 친화를 통해 전 시대와 달리 새로운 면모를 보이는 바, 자기의 존재나 이상향을 찾았고, 인생과 자연에 대한 진취적 의욕을 보이므로써 현실대응의 방식으로 이해하여 시를 통하여 자연의 특성을 살폈다.
'시적 자아의 분석'에서는 시를 발화의 한 양상으로 보고, 시적 자아 <나>를 중심으로 대상이나 세계와의 관계를 살펴, 그들의 시세계에 대한 확인과 근거를 마련하였다.
'현실인식의 문제'에서는 시에 드러난 현실인식을 보다 면밀히 보기위해 그 일련의 과정을 상정하고 이에 따라 그들의 현실인식을 살펴, 식민지 상황이나 그로부터의 해방에 적극적 항거나 시선을 주지 못했으나, 그러한 정서를 승화시킴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독특한 서정세계는 1) 한국시의 새로운 가능성의 제시 2) 자연시로서의 가능성 3) 친일문학이 주는 상처의 극복 시사 4) 한국적 정조(情調)를 지키므로써 순수시의 방향 제시와 전통의 맥을 계승 5) 현실에 대한 적극적 저항이나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극복하는 의식의 결여를 보이나 민족의식의 고양과 민족 동일성 회복의 정서 제시 등에 있어 시사적 의의를 갖는다.
그들의 초기시는 개성있는 시세계를 구축하였으나 시대적 상황의 변화속에서 시적 변모를 해야 할 내적 요소를 갖고 있으므로써 후에 현실에 접하는, 현실에 맞서는 세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다.
본 연구는 그들의 초기시의 일관된 정서와 특성을 살펴, 그들의 시의 근간을 밝히고, 1940년대 시의 존재 양상과 그 의의를 밝히고자 했다.

(편의상 이 곳에 영문 요약 넣음)


A study on the Early Poems of the Chunglock School


Dep. of Korean L. & L.
Lee jong woo


This study, as a part considering of the aspects of1940's poetry, is to inspect the early poems of three poets participated in the Chunglock School, Jo-jihoon, Park-mokwol, and Park-dujin in relations of personal emotions or delineations of feelings and the society or the realities of 1940's in Korea. And also it is to try to confirm their individuality through contracting of their main themes, so in such bases, examined the significances of poetic history.
Jo's early poems revealed various poetic changes in closely relations of his life, but flaw aethetics of the contemplation.
Park-mokwol built the pure world of lylic which only he had, his own arcadia in the rising of individual senses, and lead top the world of general impression.
Park-dujin recognized the disagreed realities in the harmony of nature, looked forward to the world of Idea and the harmonious world to overcome its by Christianity.
In 'the aspects of the receiving of nature' they recognized the disharmonious realities, tried to discover self-existence and the arcadia that was more fresher attitude than former through contemplating and harmoning with nature.
It is to comprehend a confrontation of the realities, they revealed the progressive spirits about their life and nature. Through their poems, inspected the characters of nature. 
In 'The analyse of dichterisches Ich', considering of that poem is a aspect of the utterance, inspect the relations of the subject and the world in the focus of dicherisches Ich 'I' so, prepared the foundations and the confirmations about the world of their early poems.
In 'The problems in the recognition of reality', assumped the series of process in order to consider acutely the recognition of reality in their poems.
So it is seems that they did not express the active resistances and impressions in the colonal situations and in the liberation form such that, but tended to sublimate so that emotions. Their peculiar world of lylic has the significances of the poetic history in 1) the presentation lf new possibilities in modern Korean poetry 2) the possibility of the natural poem 3) the suggestion to overcome of the wounded part from pro-Japanese 4) the suggestion of the direction in pure poems keeping the Korean moods and the succession to the vein of the tradition. 5) though they did lack of the consciousness to overcome the contradiction of the colonal realities and the active resistances against that, the uplift of the national consciousness and the suggestion of the restoration of the national identity.
Their early poems has the unique world, has the internal elements of poetic transfiguration in changing of the situations, so ought to change to the confrontation against the realities in the attitude about the reality.
This study inspected the characteristics of the consistent emotions in their early poems, so tried to make clear th basis of their poems and the existence-aspects of the poem and the significances in 1940's poetry.


머리말

1. 연구의 목적 및 의의


본 연구는 1940년대 시문학의 양상을 고찰하려는 한 부분으로, 이른바 청록파 세 시인, 조지훈, 박목월, 박두진의 시세계를 보고자 한다.
1940년대의 상황은 크게 세 가지 역사적 사실 즉, 참담한 식민지 말기와 조국의 회복과 혼돈 그리고 국통의 분단을 공유하고 있다. 여기서 제게되는 것은남북분단으로 통일된 역사를 잃으므로써 새로운 전개 양상을 보인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40년대의 문학은 분단이전의 문학으로 잡아볼 수 있다.1)<주> 이를 그 성격에 의해 전기(1940년 전후 - 해방)와 후기(해방 - 1948.8)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일제 말기의 억압과 그 탈피라는 엄연한 역사적 구분과 상황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1940년을 전후해서 분단이전으로 40년대의 문학을 묶어 보려는 의도는 역사적 상황과는 달리, 실제 우리문학 특히 시문학에 있어 계기성을 갖기 때문이다. 이 점은 이 글에서 논의 될 세 시인에게서 확인된다. 
그들이 발간한 《청록집》(1946)은 일제 말기에 쓰여진 시들이지만, 해방이후에 그대로 발표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소위 해방공간에서 정신사적 의의를 띤다 하면, 두 역사적 상황 즉, 식민지 말기와 해방공간의 계기성으로 인해 1940年代로 묶어 시문학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좀 더 세심한 고찰이 필요하지만, 일제 말기의 문학적 공백과 상흔을 메꾸려는 의도와 우리문학의 전통을 지속시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러한 면에서 청록파 세 시인의 초기시 연구는 중요한 의의가 있다. 또, 여기서 고려해야 할 사실은 光復이 주는 의미가 문학에 구분의 을 명확하게 긋지 못하는데 있다. 광복이 우리의 투쟁에 의해 얻어지지 않고 그야말로 <도적같이 온 해방 >이었으므로 그것을 예비하는 시간과 문학적 정돈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써, 해방을 노래한 이 간행되었지만 그것이 해방의 감격적 차원에 머물고, 깊이있는 의미와 그 定立을 보여주지 못했다. 이러한 1940年代의 시사적 맥락속에서 세 시인의 초기시의 양상을 살펴, 그들의 시사적 의의를 분명히 하고자 한다. 그들의 초기시는 식민지 말기의 의 문학 또는 의 문학을 메꾸어 주는 역할과 해방이후 좌우익문단의 대립과 혼란속에서 의 방향을 제시함과 아울러, 민족적 동일성을 회복하는 역할을 동시에 짊어지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청록파를 한국문화의 전체적인 붕괴속에서 급한대로 단편적인 피난처를 구한 결과로 볼 수는 없다. 그들의 詩가 대체로 식민지 상황에 적극적인 저항을 보이지는 않았으나 암흑기의 어두운 정서를 승화시켜 나갔고, 민족적 가치관의 혼란을 한국적 로 이끄므로써 민족적 동일성을 회복할 가능성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시기에 중요한 것은 개인의 서정과 사회나 현실과의 관계속에서 시가 어떻게 존재하느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그들의 초기시를 살펴 1940年代 시의 존재양상을 조명하고자 한다.

2. 연구사 검토 및 문제 제기
청록파 세 시인은 해방이후 <<청록집》을 간행하므로써 중요한 정신사적 의미를 갖게 되며, 1940年代의 귀중한 문학적 소산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들의 시에 대한 평가는 현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이루어져 왔다. 1940年代의 시사적 맥락속에서 파악한 은 <1940년대의 시와 그 인식>에서 청록파가 암흑기에 문학적 순수성을 지키고 민족문화의 맥을 계승한 시인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문학사적 의미에서 다시 언급이 되겠지만, 한국 서정시에 새로운 地平을 열어주었다는 평가는 포괄적인 의미를 갖는다 하겠다. 청록파를 뭉뚱그려 평가하기 시작한 것은 金東里의 <자연의 발견>에서 인데, 시사적 흐름속에서 그들이 자연으로 기울게 된 필연성을 지적하여 <문학사적 의미에 있어 자연의 발견>으로 보았다. 1930年代 내지는 모더니즘은 그들 나름대로의 공과가 인정되지만, 그들이 갖는 와 메카니즘을 극복하는 데에 청록파의 임무가 주어졌던 것으로 보았다. 이후 그들의 자연의 의미 해석은 계속 언급되어 왔다. 물론, 세 시인은 그 소재에 있어 공통으로 자연을 추구하였지만 나름대로의 개성을 갖고 있어, 개별적인 특성도 함께 논의되었다. 반면, 金春洙에 의해 형식 분석을 통해 청록파에 대한 유파(ecole)로써의 문제가 제기되어 이에 대한 연구와 동조가 있어 왔다. 그러나, 청록파로 뭉뚱그림은 공통된 생리와 동질성말고도 《청록집》이 갖는 시사적 의의에서 찾을 수 있으며, 유파로서 단정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초기시 이후 다양한 시적 변모를 겪고, 그 공통점이 희미해지므로써 독자적인 시세계로 보고자 함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세 시인의 시를 독자적으로 보더라도 그들을 비교내지는 의식한 평가가 많다. 어쨌든, 그들이 갖는 詩的 共時 과 유사성속에서도 개성이 드러나므로, 연구사 검토도 다소 중복되는 감이 있더라도 개별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조지훈의 초기시 연구는 대략, 와 의 파악에 의한 내용연구, 시적변모 양상의 고찰 형태론적 접근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김동리에 의해 청록파와 함께 시사적 의미가 주어져, 그 성격으로 민족적 경향과 인 두 경향으로 파악되었다. 제재와 관련해서는 균형과 조화의 美, 고전적 등으로 언급되었다. 金宗吉은 < >< >등이 발상임을 지적하고 불교적내지는 선적 요소를 내포한다 보았는데, 한시 수용의 문제는 李東歡에 의해 다루어졌고, 에 대한 관심은 지속되어 金海星, 金容太, 朴喜宣등에 의해 언급되었다. 申東旭은 시대에 처한 신념과 자세를 살펴 그의 시에 저항의식과 상황의 극복을 의지화함이 드러난다 보고, 전통에의 자세로 보았다. 김종길은 조지훈 시의 를 밝혀, 시의 경항을 분석하였고 서정주, 최창록 등에 의해 자연에 대한 으미 연구도 지속되었다. 金興圭는 조지훈 시에 계승된 전통성을 올바르게 인식하기 위해 존재론적 천착이 요구됨을 주장하였고, 鄭漢模는 추천시기의 < >과 < >의 두 경향을 분석하고 그의 전통적 특성을 살폈다. 金允植은 그의 전통성을 시인하면서도 조숙성과 조급성, 또는 심정의 좁힘과 넓힘의 문제에서 오는 그의 시적 실패나 성취를 살폈다. 오탁번은 지훈시의 율조, 비유와 상징, 의미와 이해등을 살피고 있다. 宋在英은 시의 전통성에는 생성과 소멸, 순응과 거부의 과정이 있는 바, 그의 리리시즘이 한시나 시조와 관련된 순응적 복고적 미학의 한계를 지적하고, 그의 선시적 특성을 부인하는데, 시의 원숙성의 문제를 들고 있다. 金容稷은 그의 시가 전통성과 현대성을 갖으면서도 실패한 까닭을 살펴, 허술한 , 서민대중을 외면한 선비정신, 시대적 압력, 해방뒤의 시와 의 혼동등을 지적하고 있다. 박두진은 그의 을 살핌과 아울러 그의 시를 3기로 나누어 古 , 自然, 自我를 중심으로 파악하였다. 양왕용은 삶과 시적 변모 과정의 연관성을 살펴 초기시를 구분하고 그 특성을 살폈다. 金奉郡은 그의 생활과 밀착된 시적 변모 과정을 살피고 그의 시에 있어 전통지향의 미학을 지적했다. 
3)형태론적 접근은 김춘수에 의해 시의 형태 문제와 운율과 리듬에 피해 언급되고, 그외에 양왕용의 논고가 있다. 朴木月의 초기시 연구도 대체로 제재및 주제의 파악에 의한 내용연구 시적 변모양상의 고찰 형태론적 접근으로 대별할 수 있다.
1)김동리에 의해 <自然>과 < >로 언급된 이후, 서정주는 남방적 정서를 강조하였고, 박두진은 짙은 향토색을 배경으로 한 소박한 자연으로, 또, 동영적 자연과 정서에서 비롯된 의 미학, 김소월류의 민요적 율조, 민요의 전통을 현대의 지성으로 육종등의 견해가 있다. 정한모는 향토적인 자연의 소재를 끌어 올려 의 고향을 창근하였다 보았고, 오탁번은 개인적 표현으로 가장 보편적인 정황의 세계의 구현으로, 신동욱을 시대의 막힘에 대한 하나의 대응, 밝고 청순한 세계의 지향,외로움의 인식으로 보았다. 는 소기시를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형식과 내용을 유기적으로 조화시켜 고도의 예술성을 획득하며, 한국전통에 뿌리박은 의 미학을 보여준다고 보았다. 그외에 자연에 대한 의미 연구는 계속되었다.
2) 은 << >>에서 << >>(1976)까지의 시적 변용을 살펴, 에서 환상과 향토를 사랑한데서 초기시의 순수무구한 서정으로 변용되었다. 보고, 그의 시가 민요풍으로 오해되었다고 한다. 은 변모 양상의 내적 연관을 추적하여, 화자, 대상, 정서의 관계를 살펴 구조적인 변모를 살피고 초기시의 경우, 화자와 대상이 굼꾸는 사람, 임으로 파악하여 <<청록집>>의 정서는 슬픔, 불화의 관계로, << >>는 슬픔의 순화, 화해의 관계로 보았다. 그외 대부분의 글이 시적 변모 양상에 관심을 두고 있다.
3)김춘수에 의해 운율과 리듬에 더해 언급된 이후 은 전통적 운율과의 관계를, 은 초시기의 리듬을 집중적으로 다루었으며, 를 형태상 특장의 새활용에 관심을 두었다. 그외에 강현국에 의해 어조(tone)의 분석이 있다. 의 소기시 연구는 대체로, 앞서 언급한 청록파로서의 시사적 의의의 규명외에 1)소재및 주제를 중심한 내용분석으로 1.자연의 의미분석 2.기독신앙을 중심한 분석 3.시적 변모 양상의 고찰 4.그외 다양한 분석 2)형태론적 접근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1)1.김동리에 의해, 그의 특이성은 자연속에 살면서 <다른 태양>이 솟아오기를, 메시야가 재림하기를 기다린다고 보았다. 조연현은 원시인이 가진 자연에 대한 소박하고 단순한 경이와 존엄같은 것을 지닌 에의 신앙으로 보다가 자연에 대한 특이한 관념적 신앙을 하나의 이념으로 확립했다고 하였다. 백철도 자연과 일종의 경건한 종교적 신앙으로 보았고, 김문직은 그의 자연은 자연을 통해 들끓는 자아를 달래고 있고 <내>가 인식되는 서구적 발생의 자연이며, 신앙이 시적 자세의 토대가 된다고 보앗다. 정한모는 청록파를 유파로 인정하여 시사적 맥락속에서 그들의 의의를 살피면서, 두신의 시는 자연속에서 거룩한 힘과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한 이데아를 지 향하여 종교적 신념을 시로 승화시켰다고 보았다. 최창록은 동서양의 자연관을 대비하고 자연의 양상을 살펴 자연시의 시계를 확대 심화하여 한국 자연시에 서구적 요소를 결합시켰다고 파악했다. 2. 은 그의 육체의 바탕은 자연으로 <다른 태양>을 부르는 소리는 기독교 정신에의 저의로 보고 인간구제의 방안으로 기도하는 자세를 보인다 하엿다. 는 신앙적 차원에서 이해하여 그의 시가 성서적 소재를 소화하고 신앙적 갈구를 엿볼 수 있다 하였다. 은 그의 시를 기독교문학으로 보고 자연과 종교의 융합으로부터 경건한 신앙심을 시화했다고 보고, 그의 이상은 신의 의지에 순응하는 자연 질서에의 귀의로 파악했다.
3. 은 << >>(1963)까지의 시를 2기로 나누고, 1기에 << >>의 시계를 포함시켜 자연을 소재로 삼아 주제를 입상시키고, 처절한 현실의 비극감을 인식하면서도 그 비극의 승화를 이상에 기대하고 있는 이상주의적 경향이 짙다고 보았다. 은 <<하얀 날개>>(1967)에 이르기가지 현실인식의 양상을 살펴, 그의 시의 성공은 현실과 이상의 갈등이 고조되어 있을 때로 보았다. 는 그의 을 순진과 경험의 역설적이고 모순 대립의 양상으로 파악하여, 초기시의 시계는 현실을 거부하여 초월적인 진실을 긍정하는 의 세계로 보았다. 은 시에 있어 공간의 와 시정신과의 연관속에서 시적 변모를 살펴 새로운 접근을 보이고 있다.
4.김춘수는 청록파 시인들이 20年代 시인들의 계보를 잇고, 정지용의 세례로 20年代시인들의 심미적 완성자로 보고, 와 간략히 비교하나 제시에 머물고 있다. 은 자연에 눈을 돌린 것을 결국 으로 보고, 자연을 정복하고 주관적으로 창조, 하는 의지적 시인으로 보았다. 또한 그의 관념성을 지적했다. 정현기는 에 얽히는 과정을 통하여 자연으로의 현실도피의 평가를 반박, 조명하고, 그는 기독교인이전에 시인으로 시를 경건한 신앙심의 경지에서 쓰며, 애정의 시인으로 보았다. 오통춘은 시기와 관계없이 보나, 대체로 초기시를 자연을 통해 본 민족시로 보고 있다. 오탁번은 기독교에 바탕을 둔 종교적 의미의 시는 관념적이어서 시회되지 못하므로 시의 라고 부정적 견해를 피력한다. 는 자연의 인식에서 보여주는 생명적 이미지, 능동적 상상력, 우리말의 운율적 가능성을 파악하였다. 신동욱은 신앙과 시가 결합되었다고 보고 시대와 직결된 삶의 의식과 그 가치를 해명하여 민족적 희생을 태양의 원리로 늠연하게 구가하고, 저항의 자세 확립, 율격의 미적 가치, 한계의 인식과 초월의지, 그리고 전체성의 인식을 지향하는 지속의 원리등 종합적으로 파악하려 하였다. 신대철은 시의 자세를 통해 초기시와 수석연작시를 비교, 초기시는 자연을 통한 형상화, 천상적인 삶에의 추구, 시의 가치를 인정하는 자세등으로 파악하였다. 김윤식은 그의 시가 암흑기 문학은 문학사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을 마련했다고 보고, 그의 영원의 본향이 기독교적이나 환각적 측면에서 동양적 이상향에 접맥된 것으로 보았다.
2)김춘수는 시의 형태에 있어 행이나 연의 구분에 따라 그 효과가 다름에 주목하여 < >과 <해>가 리듬을 인식한 바, 자유시로 쓰는 것이 효과적이라 보고, 심리적으로 자유시이면서 형태상으로는 산문시가 되고 있는 묘한 굴절을 보이며, < >은 의미가 음악적 분위기로 하여 미묘해지므로 산문시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 좋다고 보았다. 그러나, <해>의 경우, 형태의 변화에서 그 시가 주는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김윤학은 운육을 중심으로 <해>의 문제언어학적 접근을 시도하여 <해>가 주는 희망의 세계는 운율에 의해 밝게 빛나고 있다고 파악했다. 강현국은 <<청록집>>을 중심으로 어조의 특성을 다양한 접근으로 파악하여 세계인식을 살피려 하였다. 그 외에 의 운율적 고찰이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세 시인에 대한 연구는 논자들의 개성적 안목에 의해 다양하게 논의되어 왔다. 이에 필자는 1940年代 문학사적 맥락에 유념하여 의 과 나 과의 관계속에서 세 시인의 소기시의 존재양상을 보려하므로 논의된 일부에 대한 동조나 반박으로 그러한 연구와 관련을 맺으려 한다.
1940年代의 문학사적 맥락으로 그들의 초기시를조명하거나 비교한 연구는 찾기 힘들므로, 이 글은 그러한 일면에서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한다.

3. 연구 범위와 방법
세 시인은 <<靑鹿集>>을 근간으로 하여, 각 시인의 첫 시집에 이를 재수록하여 정리하고 있다. 박두진의 <<해>>(1949), 조지훈의<<풀잎 >>(1952), 박목월의 << >>(1955)가 그것으로 를 형성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볼 때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그 작품들이 20대 청년시절에 쓴 작품으로 40年代의 임을 알 수 있다. 세 시인의 시기 문제에 있어서는 여러 논자들의 의견이 거의 일치하는 바, <<청록집>>의 세계와 세 시인의 첫 시집의 세계를 각 시인의 초기시로 보고 있다. 본 연구에서도 초기시의 범위를 동일하게 보았고, 작품 대상도 위의 시집을 중심으로 하였다. 
본 연구는 1940年代 시사적 맥락에 유념하면서 개인의 서정과 사회나 현실의 관계에서, 그 인식의 대립이나 갈등의 양상에 촛점을 맞추어 작품을 보려 하였다. 그러한 면에서 이 글은 그들시에 대한 세밀한 작품분석보다 종합적인 견지에서 고려하여, 초기시에 흐르는 일관된 정서의 기초를 찾으려 하였다. 또한, 그들의 초기시에 주요한 테마로 생각되는 자연의 수용양상, 시적 자아의 성격, 현실인식의 비교를 통하여, 성격과 시적 개성을 보려 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세 시인이 자연과 어떠한 관계에서 무엇을 드러냈는가 하는 문제와 문학을 의 한 양상으로 보고 시적 자아의 성격 파악, 시와 현실과의 관계 양상을 보려 하였다. 그들의 詩觀의 비교도 고려하였으나 그것은 여러 이유로 제외시켰다. 이러한 분석의 종합을 통하여 그들의 詩史的 의의를 살펴 보았다.
이 글은 초기시에 국한하여 봄으로써 이후의 다양한 변모의 과정과 그들의 전체적인 변모를 밝히지 못하고 있다. 또한 1940年代 한 시기를 잘라 보는 共時的 연구의 한계를 갖고 있다. 그들 시에 대한 보고 깊이 있고 다양한 비교와 접근이 가능함에도, 몇 가지 테마에 그친 것도 아쉬움이며, 한계이다.

세 시인의 초기시의 양상

(계속 공사할 것입니다, 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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