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논단

외화내빈(外華內貧)과 퇴보(退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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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내빈(外華內貧)과 퇴보(退步)


우리 한민족이 단군이래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들 한다. 그 풍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으나, 물질에 눈이 멀고 금수강산(錦繡江山)을 훼손하기 그지없고, 정신부재(精神不在) 속에 살고 있으니 이는 우리가 서구문명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한 것이며, 늘 외세에 시달려, 민족의 무의식에 이기(利己)가 숨어 있는 듯하다.

보릿고개를 낭만으로 아는 '배불러 터진 시대'에서 살기란 힘들다. 나이가 들고 세월이 감도 있으나, 이 시대 정신이 없고 잇속만 따지는 사람들이 바쁘게 사는 법(法)이 소용없는 세상, 무서운 세상이니 순박한 사람과 갖지 못한 자나 가지길 애쓰지 않는 자는 그저 묵묵히 살고, 물질과 권력을 찾아 헤매는 야수(野獸)들이 활개치는 세상. 이런 것들이 우리의 외화내빈이요, 퇴보라 하겠다. 이에 대한 예를 들라면 끝도 한도 없다. 이의 극복 없이는 한민족의 진정한 내일은 없다.

우리의 민주주의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이 땅에 '막스 웨버' 전공자는 많다고 하고, 미국 선진 민주주의를 배워 온 자 많다고 하는데, 천민자본주의가 경제의 바닥에 짙게 깔리고, 민주주의의 토론 문화가 없는 이러한 토대 위에서 개인과 사회의 신장이란 쉽지 않다. 더구나 실력보다 눈에 훤히 보이는 학연, 지연, 혈연에 엉기어 이 땅 민주주의의 나무는 자라지 못하고 있다.

풀뿌리 민주주의로 서민의 뜻을 반영하고 지방자치를 실현한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더럽고 어지럽기 이루 형용할 수 없다. 무엇보다 금권, 탈법 선거로 민주주의의 뿌리가 내리지 못함은 물론이요, 오히려 썩어 가는 듯하다. 민주주의의 꽃은 선거라 하는데 오육십 년대의 막걸리와 고무신이 지금 21세기 초에는 간편하고 유용한 지폐로 바뀌었을 뿐, 그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신은 살아있는가.
조선시대의 탐관오리들이 여전히 활개치어 지자체 단체장의 20%가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하니, 우리의 풍토에서 각종 선거는 민의(民意)의 반영이라기보다 천민자본주의의 단면으로 아직까지 국고의 낭비라 하겠다.

저 조선시대의 정쟁(政爭)은 양반들의 벼슬차지 아귀다툼인데 그들이 어찌 서민의 삶의 질을 올리려 하는 데에 관심이 있었겠는가. 그 시대 참 목민관, 청백리(淸白吏)가 적었듯이 이 시대 참 목민관은 도대체 얼마나 되고 누구인가. 이 좁은 땅에서 무엇이 그리 이해타산이 복잡한지 모르겠다.

오랜 역사가 자랑만이 아니라 짐이 될 때 21세기를 사는 후손들은 해야할 일이 많다. 풍요로운 시대에 즐기기보다 그리고 경제성장보다 더 어려운 의식의 성장, 그 개혁을 이루어야 하는데, 이 점에 있어 한국의 젊은이들은 아직까지 미더워 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익히 보아온 민주주의나 자본주의에 대해 꽤 나름대로 적응되어 있고, 또한 개혁을 바라지 않는 듯하다. 대체로 등 따시운데 골치 아픈 일을 하려 하지 않을 듯하다.

우리가 넘어야 할 고지는 험한데, 위대한 민족으로서의 비전이나 선진 시민으로서의 꿈이 없다면 우리가 이룩한 한강의 기적 그 이후는 사상누각(沙上樓閣)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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