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논단

시적 진실과 종교적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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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적 진실과 종교적 자유(연세 춘추 1981.3) 

- 구 상(具常)의 시세계

가. 머리말

시는 피 속에 산다. 시에는 시인과 상황이 갖는 흔적과 체취가 살아있다.
그 만큼 시에는 타오르는 영혼의 불꽃뿐만 아니라 역사가 담겨져 있어야 한다.
또한 필요한 언어, 정제된 언어가 그 영혼의 입김에 승화될 떄 좋은 시가 나올 수 있다.
시정신은 땀으로 얼룩진 삶의 구석구석에서 살아외쳐지는 것이다. 일찌기 시가 현실의 부패에 소금같은 역할을 했을 뿐아니라 예언적인 기능을 갖게 되었던 것은 그런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글은 우리 시사에서 문제적 개인일 뿐아니라 새로운 시의 좌표축을 이루는 구 상의 문학세계를 간략히 더듬어 보는데 그 뜻이 있다.
즉 그가 6.25를 앞뒤로 한 상황속에서 시에 나타낸 문학적 소산이라든가, 우리 시가 갖는 시적 분위기와의 다른 점을 찾아보는 일, 그리고 그의 시에 나타난 종교의 의미등을 살피는 것이 이 글의 주안점이다.

나. 몸말

최근에 있어 민족감정을 가장 치열하게 말해 주는 것으로 8.15와 6.25를 들 수 있다. 민족자주에 대한 열망과 민족분리의 아픔이 엇물려 만날 떄, 이 땅의 시인은 무엇을 했던가?
시인은 민족의 소리를 말할 충분한 까닭을 가지기에 현실을 바로보고 미래의 빛을 찾아내는 노력이 있어야 했음을 말하고 싶다.
더구나 그런 민족적인 위기의 순간에 작으나마 빛을 보고, 따스한 인간애로 그 아픔을 달랬던 시인은 드물었던 것이다. 다음 두 편의 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민족 감정의 포착이었다.
(1) '동이 트는 하늘에/가마귀 날아 밤과 새벽이 갈릴 무렵이면/<카스바> 마냥 수상한 이 거리는/기인 그림자 배회하는 무서운/골목... (중략)떠오는 태양함께/피 토하고/죽어가는 사나희의 미소가/고웁다' ('여명도' 1,2, 마지막 연)
(2) '우리의 부활을 증거하여/무덤위에 필/알알의 목숨의 꽃씨를/즐거이 정성들여 뿌리자' ('초토의 시 10' 마지막 연)
(1) 은구 상이 해방직후 원산에서 민족분열의 불길한 조짐과 그 시련을 보인 문제작이었고 이것과 관련하여 <응향필화사건> (1974년 7월 '심상' 참조)이 일어났으니, 그 당시 북녘의 분위기가 생생하게 묘사되었다고 보여진다. '죽어가는 사나희의 미소가 고웁다'에서의 자기희생의 성찰이 주는 의미는 현실을 바로보고 그 현실 속에서 부활을 기다리는 미적인 승화라 할 것이다. 즉 구상은 민족의 바램과 아픔을 윤리적인 차원으로 이끌었고 예지적인 목소리를 던지고 있었다.
(2)는 '초토의 시' 전편을 통해 표현되는 <예찬할만한 인간옹호의 행동>을 잘 보여 준다. 그가 말하듯 '시가 본래적으로 지니고 있고 또 오늘의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 강렬한 휴머니티의 연소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며, 새로운 시대정신을 적극적으로 탐구하고 영원속의 현존을 추구, 파악하려는 자세'가 그의 시의 방향이라 할 때 <알알이 목숨의 씨>를 가꾸려는 노력이 '강' '난중시초'로 지속됨은 보기 드문 시적 진실이라 할 것이다. 이는 김 윤식 교수가 명료하게 지적하듯이 <역사 안에서의 울림>과 <역사너머에서의 울림>을 동시에 가짐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민족이 갖는 현실을 인류의 운명이나 그 불행에 투사할 때 새힘을 갖는 것이다. <그리스도 폴>의 일화에서 출발한 '강'이 그리스토 폴의 회심과 수덕을 승화시켜 나갈 때 그 시적인 실천이 구원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김교수가 '구 상은 아픔의 말만 있고 그 시적 실천이 없을 때.,...'로 지적한 것은 성급한 말이 되기 쉽다. 또 '강'이 구체적으로 이 땅의 낙동강, 부전강, 한강등으로 머물지 못한 것은 그리스도가 인간 내부속에서도 얼마든지 나타날수 있고, 그 자체가 구체적 <강>속에 머물 때 그가 갖는 '세계정신'이나 '비평정신'은 비애에만 머무는 것이다.
그가 겪은 민족적은 아픔이 그의 체험과 인격속에서 하나로 살아날 때에 구원과 부활의 증거를 향한 정진에 더 큰 뜻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그가 '한국의 시나 시인에게는 페이소스는 있으나 비극에 인내하는 정신이 없다'고 말하고 '쉽사리 전통에 멸입해서는 안된다'며 강한 어조로 말하는 데에 있다. 그러므로 그가 '정신부재'를 안타까와 하여 인간실존 추구에 나서서 '인간실존의 사다리는 불안이 아니라 수치다'라고 말하며 윤리적 체험을 시속에서 찾게 됨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의 '시의 내용은 이를 지탱하는 사상이나 체험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 이를 뒷받침해 준다. 이러한 바탕이 '까마귀'에서 변형된 목소리로 나타나고 '상황'에서는 윤리로 나타난다.
그의 말대로 그에게는 '장인적'인 면보다는 '사제적'인 면이 강했고 '파토스적'이라기 보다는 '에토스적'이었다.
'너희는 영혼의 갈구와 체읍으로/영영 잠겨 버린 나의 목소리가/불길을 몰아온다고 오해하지 말라/오직 나는 영롱한 내 심안에 비친/너희의 불의가 빚어내는 재양을 미리 알리고 일깨워 줄 따름이다. ('까마귀.3'에서)
'여러분 나를 정녕 기쁘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누구난 듣고자 하지 않는 것을 나는 노래하고 말하는 것이랍니다......' ('상황', Ⅲ<파우스트>에서)
그는 현대문명과 사회의 부조리를 역사적 현실앞에서 전일적인 실존의 전개로 이루었기에 그에게 신현실주의 시인이라 부르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신현실주의의 내용 (구상, '나의시의 좌표'시와 의식 11집, 김윤식 '우리문학의 넓이와 깊이' 96~97쪽 참조)은 생략하지만 사회적 현실주의와 초현실주의의 통합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구상이 쓴 시의 방법론을 살펴보면 '의식적으로 시에서 비유와 이미지를 피하고 평면적인 서술을 택하는 일면도 있다. (중략) 결국 시란 그 전체가 주제를 복합적이고 종합적으로 비유한 것이요, 또 자기의 진실이 궁극적으로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한다.
사실 그의 시는 평면적 서술이 많지만 추상적인 것을 이성에 직접 호소해도 이미지는 만들어지며 우리 현대시의 문제의식을 나름대로 해결할수 있다고 본다. 이것은 서정성과 메타포 없이도 선명한 이미지의 효과가 가능한가의 문제인데, 이는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이것은 시의 본질적 문제인 정신과 언어의 결합에서 야기된 것이며, 엘리어트가 말한 '사상의 정서적 등가물'에 비춘다면, 구 상의 시는 편파적이라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한 검토해야 할 것은 그가 향토적 자연 서정과 주지적 감각의 전일된 의식과 그 표현을 시에 담아야 한다고 하고, 과연 그의 시속에 그것이 가능했는가일 것이다.
'하숙방 <다다미>에 누워/나는 신의 장례식을 날마다 지냈으며/길상사 연못가에 앉아 <짜라투스라>가/초인의 성에 오르는/그 황홀을 꿈꿨다.'('목과 옹두리에도 사연이.6'에서)
대체로 '까마귀', '난중시초', '신령한 소유' 등 곳곳에서 진술적인 구절들이 보이지만 그런것들은 그의 믿음과 내면적 성찰로 전일적 형상으로 나타난다. 이것이 곧 그가 말하는 복합적이고 종합적인 비유이겠기 때문이다.

다. 맺음말

구상을 이야기함에 있어서는 시와 믿음과 삶을 한데 엮어 말해야 할 것이다. 그는 자서전적 수기에서 '제일의적인 것은 종교와 그 생활'이라고 했으며 이것은 그에게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가 말하듯 시는 '전심치지 일생을 바쳐 후회없을 가장 존귀한 소업'이며 '삶의 최고의 성실'임을 알게 되었다는 표백과 다음 시가 보여주는 의미의 상충을 어떻게 설명하느냐일 것이다.
'너 아둔한 친구 요한아!/가량 네가 설날 아침의 햇살같은 눈부신 시를 써서 온 세상에 빛난다해도 너의 안에 온전한 기쁨이 없다는 것을 아직도 깨우치지 못하였으나' ('요한에게' 1연)
그러나 이런 개념은 상하관계로 파악하기 보다는 구원의 의미로서 해결돼야 할 것이다. 결국 그에있어 시적 구원이든 종교적 구원이든 같은 뜻을 갖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데아와 소업의 차이라 말해도 좋은 것이다. 그가 예언적 목소리를 가지며 사회를 고발하고, 휴머니티을 태우는 것은 구원과 자유를 향한 열정이며, '민주고발' (사회시평집) 에서 볼 수 있는 자유의 신념이 그의 시속에서 면면히 이어져 오는데서 끄집어 낼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살아서 참고 견디자니 이 뒤틀린 세상, 눈꼴신 자칭 기사들의 오만과 횡포, 그 학대와 멸시를 이 이상 더 어떻게 감수한단 말인가?'('상황' Ⅲ
<햄릿> 에서)
그의 자유에는 인간애가 스며 있다. '진혼곡', '우음이장' 등에서 보이는 자유의 세계는 그만큼 낙천적이며 조화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그 사상적 기반으로 인해 안정되게 보이는 것이다. 여기서 진실과 자유의 융화를 보게되는 것은 한국시사에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위에서 보아온 바와 같이, 구상의 시세계는 무엇보다 예수의 이해 없이는 불가능할 만큼 예수와 만나려는 노력으로 차 있다. 그가 '밭일기' '강' '까마귀' 등 대부분의 시를 연작형태로 다루는 것은 그러한 전일적 추구와 아울러 시와 신앙, 시와 인격이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나타나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의 문학세계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는 그의 새로운 선행이 요구되며 그 이유는 시의 진실이 단순한 이미지의 결합이 아니고 삶과 믿음이 엉켜서 형상화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접근은 성급할 필요가 없으며 이것이 바로 구상의 문학적 흐름과 상통하는 것이다.
▲도움받은 책
- '구상문학선' (구상, 성바오로사, 1975)
- '한국근대문학사상비판' (김윤식, 일지사, 1978)
- '우리문학의 넓이와 깊이' (김윤식, 서래헌, 1979)  

- '까마귀' (구상, 홍성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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