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계

<환상이 실재될 때>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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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21

 


책머리에 몇 마디
시인 구 상(具常)

이 종우님이 나를 찾은 것은 그가 고등학교 시절이었으니까 이미 10년도 더 넘는다. 그는 그 때도 꿈이 많다기보다는 생각이 많은, 즉 사색형의 소년이었으며 놀랍게도 그때 벌써 시집을 펴내었다. 그 뒤 대학때나 군복무 때도 때마다 소식을 알려오고 있었으나 시작의 정진 여부는 근래까지 내색하지 않아서 그의 조달이 일찍 시들지 않았나 하는 기우도 없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이렇듯 100여편이나 되는 시작품을 한데 묶어 펴내겠다고 그 교정쇄를 들고와 내놓으매 나는 그 작품의 우열보다도 그의 초심불망에 감동과 기쁨을 먼저 갖는 바다.
내가 훑어 본 그의 시세계는 한마디로 말해 감각적이라기보다 천성대로 사색적이어서 그 이미지의 조형도 물상적이기보다는 논리적 요소가 짙다. 그리고 그리고 그의 사색은 사물에 대한 실재를 인식하고 추구하는데 있다. 이것은 한국의 오늘의 시가 너무나 감각적 세계에 기울어져 있는 현상에서 퍽으나 반가운 일이라 하겠다.
그러면서도 오직 아쉬움이 있다면 T.S 엘리어트가 말하는 바 "시의 논리(사상)가
장미향처럼 풍겨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나의 주문은 마치 옛 우화에 혀짧은 훈장이 "나는 바담 풍 하지만 너희는 바담(바람) 하라" 는 격이라 하겠다.
어쨌거나 이종우님은 이 시집으로서 이제까지의 습작기를 마무리 짓고 이제부터는 자기 천분에 대한 자각과 사명감에서 즉, 시라는 한자가 말씀 언(言)변에 절 (寺)를 하듯 아티산(장인)적인 의식과 프리스트(사제)적인 의식을 가지고서 시업에 대장부 일생을 거는 결의와 출범이 되기를 바라고 믿고 또 합장하는 바이다.

1988년
구 상 적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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