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세계

<사랑과 죽음 사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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後 記


시를 써서 남에게 보이는 것이 위험한 시도인지 모른다.
더구나 <움돋지 않은 가지>에서 꽃을 피우려는 것이 가련한 시도인지도 모른다.
이렇게 시라고 장식된 시집에서과연 시라고 된 것이 몇 편이고, 아니 단 몇 줄의 시구가 되는 것이 있으련지 솔직히 말하고자 한다.

시는 정녕 나의 화신이고 생명이기에 시란 일생이 되어야 하고그만큼 진한 고통 속에서 하나의 化身은 탄생할진데, 여기에 선 보인 것들은 나의 삶에서 얼마만한 태동 끝에 탄생했으며 정말 못 배겨서, 백지와 싸워 이겨서 썼는가? 하고 자문해 본다. 그러한 갈등들은 너무 늦게 찾아 온 것같다. 조금 일찍 찾아 왔더라면 나의 못난 약속은 없었을 것인데, 그러나 지난 시간을 탄한다는 것이 어리석다는 것을 알기에 미래에 대한 나의 희망으로 말을 이을 수밖에 없다.

언젠가 밝혔듯 한 편의 시를 위해 정말 진지하고 어렵게 생각하겠다고 말했지만 그러지를 못 했다. 온 몸이 떨리도록 그리고 내 혼에서 지나치는 써야 할 사건들이 심연의 목소리를 통하여 나왔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그러기에 구 상(具常)선생님은 <시를 편 수만 늘일 생각을 말고 한 편이라도 완성(?)해 보려고 조탁을 거듭하기 바라오. 저 석물 하나를 만들기에 비지땀을 흘리는 석공들이나 한 번의 경기나 시합에 임하려고 나날을 트레이닝으로 보내는 운동 선수들보다 몇 배 , 한 편의 시를 위해 정혼이 기우려져야 한다오.>라고 엄숙한 충고를 해주셨다.

과연 시란 부단한 희생없이는 이루워지기 어려울 것이다. 시가 인간정신의 탐구요, 진지한 인생의 표현이기에 삶과 대치할 해산의 고통이 필요한 것이리라. 이렇듯 시의 정신이 중요하지만 표현의 중요성 또한 무시할 수 없어 어떤 시인의 상상력과 새로움을 찾으려는 관찰력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구상선생님께서 지적하셨듯이 나의 시는 자기의 마음을 그린다기보다 노래한다는 것이고, 감정의 유로나 감동의 점철을 벗어나지 못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다. 시각적 이미지의 시각적 이미지의 형상과 현대의 주지적 욕구를 생각할 때 남다른 상상력과 관찰력과 조어력을 구사하지 않으면 안되리라는 것을 절실히 느끼며 앞으로 예리한 <눈>으로 모든 것을 보고 예리한 시를 쓸 것을 약속한다.

이 시집은 그러한 구비조건을 갖추지는 못했지만 나대로의 귀중함을 느끼며, 학생시절에 문학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문학도에게 조그만 지침이 됐으면 한다. 이 시집에서 주를 이룬 사랑과 죽음은 일생을 통하여 이야기할 것이지만 진정한 사랑은 죽음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고, 죽음 앞에 의연하려는 마음을 노래하였으나 성공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아무튼 사랑과 죽음에 조금이라도 접근하여 본 것이 사실이여서 나의 생활에 어떤 변화를 준 것입엔 틀림이 없을 것이다.
언젠가도 느꼈지만, 무슨 일이든 자기의 성의를 다하여 이룩하려 했을 때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든 경험하지 못하고는 느끼지 못할 허탈감에 빠지기가 쉽다. 그렇지만, 이 허탈감을 극복하면 훌륭한 추억이 되리라 생각한다. 부단한 노력과 극복!

나는 앞으로 다가온 고통과 진정한 체험에서 나온 조각들을 진한 고통속에 용해시켜 한 편의 시를 쓰려 한다. 용해되어야 할 사랑과 죽음, 사회의식-시는 나의 화신이기에 글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으로 그 뜻을 펴야 한다.
또한 사회에서 단절된 것들을 밝히고 그러므로해서 자연과의 친화, 자연과 문명의 교량적 역할 등을 한국의 전통적인 것과 결부시켜 전통적으로 내려온 정서를 우리 시대, 나아가서는 후시대에 이어 생활화한 시를 써야겠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불안감을 갖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러나 나의 귀중한 것들의 탐구는 끝나지 않을 것이고, 어디를 가도 이 탐구하려는 노력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결의에 위안을 주신 구 상(具常)선생님께서 <자기 감동을 그만큼이나 미적 질서로 恒存시켰다는 그것만으로도 賞讚을 받을 바요, 또 그것이 지니는 청순으로 말미암아 동년대의 심혼을 오히려 쉽게 불러 일으킬 가능성을 상기할 때 나의 직능적 소견따위는 무색해지기 때문이요.>라고 귀고를 써 주시고, 시고를 보아 주신데 감사와 표지를 그리신 이 정수 선생님 그 밖에 이 시집에 도움을 주신 분께 감사드립니다.
1975년 7월 이 종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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