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감상과 이해

윤 준경 <유배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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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내나는 내일의 시<26>


유배를 위하여
윤 준경(1945- )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누가 나를 유배해 다오
나의 죄목은
방조죄
죄, 바라보고 웃은 죄

누가 나를
보길도, 보다 작은
간월도,
한 점의 무인도로
유배해다오.

뱀의 혀 같은 바다를 몸에 두르고
밤낮을 공포와 비탄에 울어, 나는 죽고
살아남을 시
한 편 있다면
나의 자유와 평안으로부터
천년의 땅, 고독의 함정으로
누가 나를 밀어 넣어다오
나의 피 묻은 창(槍)이 되어다오.

최근 사이버 시대의 문이 열리면서 컴퓨터를 통해 문학에 정진하고, 즐기는 이들이 많다는 것은 정신부재의 시대에 고무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문학이 인간의 구원에 있다 할 때에 더욱 소중하다 하겠다.
윤 준경 시인은 언어의 세련미와 삶을 천착하는 시를 써 오고 있는데, 이 시에서는 <죄>의 인식을 통하여 스스로 정죄하지 못하고 방조한 죄인임을 고백하며 유배를 갈망한다. 이는 비리가 있어도 뻔뻔하고 발뺌하는 세태에 대한 일침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한 시적 진실을 바탕으로 한 편의 절구(絶句)를 위해 죽음마저 불사하는 시 사랑의 모습이 강렬하다.
이 종우(시인/ www.ilovepoe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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