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감상과 이해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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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내나는 내일의 시 <18>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백 석( 白 石 1912∼ ? )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우리의 문학사는 언젠가 다시 써야 할 것이다. 남북의 문학을 통합하는 차원의 문학사적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월북 해금(解禁) 시인 백석은 서정적이고도 서사적인 시를 남겼다. 그의 작품이 오래 전에 나왔는데, 월북 작가를 진지하게 바라볼 때가 가까이 오고 있다.
사랑은 어느 곳에서나 존재하지만 참으로 아름다운 사랑을 보기는 용이하지 않으리. 눈 앞에 아른거리는 아름다운 님과 함께 세상을 버리고 '산골'로 간다면 저 당나귀가 좋아하듯이 행복한 일일 것이다. 현실을 떠나고 싶은 것은 일제 강점기 때만의 일은 아니고, 지금 우리의 살이에도 있으리. 푹푹 눈 내리는 날 고운 님 생각하는 정경과 그 마음이 따스하다.

이 종 우 (시인/ ljow@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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