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감상과 이해

심훈 <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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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내나는 내일의 詩<10>


만 가(輓歌)

심 훈 ( 沈熏 1901 - 1936 )

궂은 비 줄줄이 내리는 황혼의 거리를
우리들은 동지(同志)의 관(棺)을 메고 나간다.
만장(輓章)도 명정(銘旌)도 세우지 못하고
수의조차 못 입힌 시체를 어깨에 얹고
엊그제 떼메어 내오던 옥문(獄門)을 지나
철벅철벅 말없이 무학재를 넘는다.

비도 퍼붓듯 쏟아지고 날은 더욱 저물어
가등(街燈)은 귀화(鬼火)같이 껌벅이는데
동지들은 옷을 벗어 관 위에 덮는다
평생을 헐벗던 알몸이 추울 상 싶어
얇다란 널조각에 비가 새들지나 않을까 하여
단거리옷을 벗어 겹겹이 덮어준다.
(3연은 원래 시인 생략, 4연 지면상 인용자 생략)



심훈은 일제 강점기하에서 조국의 광복(光復)을 간절히 바라며, 의지적이고 희생적 자세를 잘 보여준 저항시의 절편(絶編) <그날이 오면>을 썼다. 그는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소설, 희곡, 영화 등 다양하고도 적극적인 문화 활동을 하였다. 특히 그는 이곳 안산 샘골 마을에서 농촌계몽운동을 하던 최 용신선생을 모델로 하여 <상록수(常綠樹)>(1935)를 현상응모 발표하게 되는데, 그 소설 제목이 현재 안산의 관문인 상록수역(驛)의 이름이 되었으니 이는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면에서 안산은 상록수의 정신을 기리며 거듭나야 하리라.
이 시에서는 나라를 위해 옥살이하다 죽은 동지의 초라한 장례와 뜨거운 동지애를 잘 보여준다. 나라를 위해 순국한 이는 저토록 가는 길에도 눈물이 나도록 궁핍하고, 친일(親日)을 한 자들은 배불리 먹고 지냈음을 상기한다면,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우리들은 언제 민족정기로 빛나는 정신을 갖고 살 것인가. 심훈의 문학 정신은 우리에게 묵묵히 그 청산을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 종 우/ 시인 (ljow@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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