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시 연구

우리 시의 영역의 어려움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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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의 영역의 어려움에 관하여

작년에 간행된 천 상병의 <귀천> 영역시집을 보고, 우리나라의 번역문학의 현실이 얼마나 열악한 지를 보았다. 88년도에 간행된 <2000년 한국 앤솔로지>에서 보았던 그 번역의 허술함을 느낀 것이다. 한 예로, 영역하기 어려운 부분은 번역자가 창작을 하는 경우가 심하다. 또 마치 제목만 바꾸면 새로운 시로의 번역이라고 느끼는 듯하고, 결국 번역은 창작이라고 말하나, 그러함에도 원시에 충실하는 것이 영역의 첫번째 중요한 사항이라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말과 우리 시의 보다 깊이 있는 이해와 영어와 영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할 것이다. 외국인을 포함한 둘 이상의 번역자가 함께 하더라도 앞서 말한 바, 우리 말과 영어 그리고 우리 시와 영시 모두에 대한 이해 없이는 크게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즉, 서로의 보완의 개념은 또 다른 삼자의 번역이라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우리의 것을 소홀히 하는 풍토 속에 있다. 한국문학의 번역에 대한 까다로운 지원 조건, 국고로의 문화사업을 하나의 힘으로 생각하는 관료주의적 자세 등 열악한 환경에 있고, 무엇보다 지원단에는 전문 번역가들이 활약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의 시인이나 작가가 문학을 통하여 삶을 깊이 있게 천착하지 못하고, 인류의 보편성에 이르지 못하는 데에 있지 않나 하는 것이다. 우리의 상황을 세계의 보편성에 이르게 하려면 끊임없이 고구해야 함에도 알량한 문학적 행위 앞에 만족하며 사는 우물 안 개구리식 아집에 빠진 것은 아닐까. 또한, 세계성 추구보다는 패거리주의, 서로 높여주기 등 조그마한 나라 한국이 갖는 고질병인 혈연, 지연, 학연이 문학에 오염된 것은 아닐까.

위에서 제기된 것들은 보다 구체적인 접근으로 밝혀질 일이고, 문제는 우리의 문학이 잠깐 반짝이면 주저앉아 버리는 안일주의를 어떻게 극복하고 그야말로 문학에 목숨을 거느냐 이다. 이는 번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리라. 세계의 많은 이들이 우리 문학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보며 인간의 보편성을 느낄 때에 그래서 영어로 된 우리문학이 많이 읽혀질 때 번역은 비로소 의미있는 것이 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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