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과 비평

기독교 단상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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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단상 1


소위 삼위일체설의 핵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예수의 하나님화(化)는 기독교의 성립을 말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십자가의 형극 이후 그의 부활의 대사건은 그 이후의 역사나 사실에 있어 너무도 빈약하다. 혹자는 이를 믿음의 부족이라 말할 지 모르나, 요한복음 3장 16절이나, 로마서 1장 4절만 가지고는 그를 확신하기에 부족하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하나님의 우편으로 가고만 것이 그것이다. 왜 그때 바로 하강하시어 하나님의 아들의 권능을 보이시지 않았는가. 더군다나, 사람이 사는 이 혼란스런 지상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 차이가 없다. 전쟁과 인간성 상실과 환경 오염 등 숱한 인간의 문제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래서 예수의 재림을 기대하는가 보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빨리 천국에 가는 편이 나을 런지 모른다.
진실로 사랑 없이 그 이름을 내세워 교세의 확장에 나서는 것은 '망령되이 하나님'을 일컫는 것이요, 심지어는 혹세무민(惑世誣民)하여 사이비(似而非)가 들끓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또한 공룡 교회의 출현은 첨탑을 높이면서도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바, 사랑의 실천은 뒷전이고마는 현실이기도 하다. 사랑은 어디로 가고, 눈앞의 이익에만 머무는 지 안타까울 뿐이다.
절대자 하나님은 이타적(利他的) 사랑과 포용과 아울러 분노의 존재이다. 인간의 덕목이 말에 머물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런 쓸 때 없는 짓인 바, 즉 동서고금 인간의 최대 과제인 지행합일(知行合一)이 필요한 것이지 금전과 욕망과 허세의 교리에 있지 아니하다. 예수가 이 세상에 새로운 세계를 약속하셨다고 믿으면 진흙탕에 휘휘적거려서는 아니 된다.
진정한 기독인은 구약을 폐지해야 한다. 유대교의 경전 구약이 예수를 확신하는 자에게 무슨 소용인가. 예수의 하나님화를 위한 필요에서인가. 프로테스탄트는 구약을 보편적 하나님의 말씀으로 여기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리고 신약을 통하여 예수가 보여준 행위는 분명 사랑의 메시지이나, 그 말씀으로 세상이 변화되지 않았으니 이 일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마호멧은 가시적 행동을 보인 바 있다.
왜 하나님이 존재하시는데 예수를 하나님과 동격으로 보는가가 기독교의 아킬레스건이다. 예수를 통해야만 구원 받을 수 있다 하면 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한 모독이다.

그 분


그는 부활하고 말았다,
이 지상에 말씀만 남기고
죄인들을 그냥 두었다.

정말 오랜 세월
달라진 것이 없다.

십자가는 높아가고 많아져도
저 오묘함을 어찌 알리

어두운 날들에
빛은 어디서 올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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