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과 비평

문 정희 시인의 '고은씨의 미당 담론에 답하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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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21

문 정희 시인의 '고은씨의 미당 담론에 답하여'에 관하여


우선 고 은의 '미당 담론'을 읽지 않고 문 정희의 글만을 읽어 다소 종합적이지 못함을 알면서도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본인이 미당의 시사적 의미를 밝힌 바 있어 문정희씨의 글에 수긍이 가지 않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졸고 ' 미당(未堂)과 <민족시인>'을 옮기고자 한다.

시가 소용이 없다함은 시인의 삶과 인격이 시와 어긋날 때요, 특히 민족이 어려울 때에 훼절이나 변절을 하였을 때는 말하여 무엇하리오. 일제 강점기에 시정신을 버리고 일제를 위해 부역한 시인을 어찌 높이 평가하리요. 신문학의 선구자 육당과 춘원도 그 친일 행위로 땅 속에 숨고 말았는데,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참회도 없이 이 땅에서 배 불리 먹고 대접 받으며 산 미당 서 정주의 경우에는 예외인가. 그의 절편 <무등을 바라보며>가 그의 지은 죄를 덮어주는가. 그가 죽었을 때 일부 언론은 그를 <민족시인>으로 높였다니 이는 민족 정신을 잃지 않고서는 말할 수 없는 망언이다.
미당이 일제 말에 저지른 반민족 행위는 익히 알려졌거니와 다시 언급한다면, 창씨개명[다쓰시로 시즈오로]을 하였고, 황국 신민화 정책에 동조 징병을 선동하여 이 땅의 젊은이를 전쟁터로 내몰았으며, 친일 작품을 발표하였다. 또한 독립투사를 불령선인으로 매도하는 등 이 땅이 프랑스였다면 처형당해야 마땅했던 인물이다. 그러한 그가 그 알량한 시재(詩才)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으니 한국혼이 없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이다. 그는 군사독재 5공 때에도 그들을 위한 텔레비전 지원 연설을 비롯, 문협 회장으로 4.13 호헌 조치를 지지하는 등 권력에 무릎을 꿇은 약한 인물이었다.
후학이 무엇을 배우리. 민족 정기 없는 시가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그 시는 치어야 할 배설물일뿐이다. 슬프고 아프다, 이 엉터리 조국이여!

물론 이 글은 미당의 시사적 의미를 고구하고자 하는 역사주의적 접근을 하였고, 작품 자체만을 말한다면 그의 절편을 통해 나무랄 데 없는 한국적 정조를 잘 드러낸 시인임을 부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미당의 시작만을 갖고 접근한다면 그의 시적 성과를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시는 단순한 언어의 표출이 아닌 인간 또는 인격이 반영되고, 사회적이고 역사적이며 아울러 사제적(司祭的) 측면이 요구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것들이 부족하고, 비판받아 마땅한 무엇을 시인이 지녔다면 찬연한 시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문 정희씨는 고 은씨가 '고인의 무덤에 흙도 마르기 전에 왜 이토록 악의에 찬 비평과 폭로에 가까운 문투'를 썼음에 유감을 드러내었다. 그러나 문학적 평가에 있어서는 그 친소(親疎)에 그 시간의 흐름에(한 작가에 대하여 한 평자의 그 작품 평이나 인간적 측면의 고려 등 시각의 변화도 가능한 일이다)관계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죽은 다음 미당에 대해 달리 말하는 고은씨의 인간적 태도를 문제 삼은 듯하다. 아울러 문 정희씨 자신이 미당의 시에 객관적으로 다가서기보다는 스스로도 기울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문 정희씨가 다음과 같이 말할 때 과연 문학적 평가의 잣대는 무엇인가 묻고 싶은 것이다.

'...미당의 시와 행적을 어떤 말로 찬양하든 아니면 헐뜯으며 그의 흠집과 상처에 비수를 들이대든 그것은 온전히 살아있는 사람들의 것일 뿐 미당과는 아무 상관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제부터 그와 같이 슬픈 흠이 있는 시인이 아니라 완벽하게 위대한 시인을 갖도록 노력하는 일이다.'

먼저, 시인은 갔어도 그의 시가 남아있는데 죽은 시인과는 무관하다는 말을 모르겠다. 시인은 시를 토하고 이 세상에서 사라지면 그만인가. 시인을 '시혼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면서 어찌 그 혼을 살아있을 때로 국한하려 하는가. 아시다시피 문학은 영원을 추구하고자 한다. 시인은 이 땅의 아픔을 고통을 감격을 환희를 승화시키려 한다. 그 승화로 해서 문학이 항구성을 갖는 것이요, 그 문학의 향이 천년 만년 가리라 보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위에서 말하듯이 '완벽하게 위대한 시인을 갖도록 노력하는 일'을 말하나, 기실 이는 미당의 과오를 하나의 상채기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고 시를 단순한 재주로 보는 듯하다. 그러한 의미에서 미당의 실수를 그의 큰 업적에 비해 별게 아니니 위대한 시인의 반열에 올리자는 말과 다름 아닌가. 물론 문 정희씨는 '시와 생애의 완벽한 일치를 보이는 시인을 기다리면서 시적 성취와 인간적 실수에 대한 논의를 하자'고 말한다. 그러나 이는 미당을 완벽하지는 못 하지만 위대한 시인으로 보자는 말로 들린다. 앞서 말한 바 시적 성취와 인간적 실수 -- 친일행위를 실수로 말하는 것은 민족정신을 훼손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조국을 위해 또는 조국으로 인해 감옥을 가고, 또 죽은 이들은 실수를 안 했다는 것인가? --를 별개의 것으로 보는 것은 <시정신>을 폄하하는 것이며, 시가 수필만큼 고백적이지는 못하나 시인의 형상과 밀접한 관계에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고은의 문학적 변모와 인간됨에 대한 고찰은 다른 지면을 통하기로 하고, 시인은 시만 잘 쓰면되지 민족혼을 갖고 일제 강점기, 미군정하의 혼란기, 독재 시대 등 불행했던시기에 시인이 훼절을 하고 변절을 하고 불의를 조장하고 옹호하여도 시와는 무관하다는 말인가.그 정신 없던 시기를 뚝 잘라내면된다는 식이 아닌가. 문학이 배고파도 두리뭉실하지 않고 꼿꼿이 심지를 갖는 것은 시정신이 있기때문이다. 정신은 썩어문드러지어도 찬연하고 오색여롱한 시만 지으면 그만인가.

시인이 죽었거나 살았거나, 그가 남긴 작품이 있기에 비평이나 평가가 있는 것이지 이를 돌팔매로 보는 것은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누가 돌을 던질 것인가'는 독자의 몫이지, '미당이 갔으니 돌을 던지지 말라' 하고, '그래서 그의 좋은 시가 깨지겠냐'고 말하는데 이는 한 마디로 어불성설이요, 비평정신의 실종이다.
비평이 비판만도 아니요, 찬사만도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학적 풍토가 아무리 패거리주의요, 인맥 중심이라 해도 시인은 그 개선(改善)을 말하고 문학의 본령을 말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다음은 미당에 대한 사실적이고도 풍자적인 시를 보고자 한다.

왜 친일 문학을 하셨는지?
그야 일본이 그렇게 쉽게 망할까 했나?
자녀분들은 잘 사시죠?
외국 갔어..
대표작을 드신다면?
그거야 국화 옆에서지.
왜요?
돈 많이 벌었어..
이모 여고의 문예반 학생이 초청 문인으로 찾았을 때, 첫 마디 무엇인지 기억하시 는 지?
그것 몰라....아냐, 기억 나 '(추으니까)스팀 있어' 했어.
시인회장을 하셨을 때 왜 5공에게 무릎을 꿇었어요?
이 답답한 양반아, 일본눔 앞에서도 무릎을 끓었는디..

이러저러한 이유로 나는
그가 합승객으로 다가 왔을 때에도 쳐다보지 않고,
기사 양반, 그냥 갑시다 했네.
( 미당의 변 / 이종우 )

시인은 시만 쓰는 사람은 아니다. 우리가 사는 땅에서 여러 모습을 여느 사람처럼 느끼며 산다. 그래서 시인은 기행이던 논문이던, 인물평이던 그가 쓰고 싶은 것을 쓸 능력만 있다면 쓸 수 있는 것이다.
미당이나 고은의 시를 '보석처럼 좋은 시'로 누가 확정했는 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 시인의 생애를 통해 하자가 많으면 그것은 보석이 아니라 그냥 맨돌이 될 수 있음을 시를 쓰는 사람이라면 음미해 볼 일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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