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문과 비평

동산의 언덕에 서서

  • 0
  • 1,172
  • Print
  • 글주소
  • 11-21

 


동산의 언덕에 서서
이 종 우(시인 / 국어과)

수업 시간이 빌 때면 가끔 사랑동 현관 앞에서 분수(噴水)가 있는 교정(校庭)과 운동장, 그리고 그 건너 조그만 나무숲과 멀리 보이는 들판과 아파트 숲을 두루 보곤 한다. 그럴 때마다 머리에 스치는 것은 과연 나는 무엇이고,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자문(自問)과 어제에 대한 반성(反省)이다.
믿음의 터전이 크던 작던, 하나님의 형상에 나날이 한 치 한치 다가가야 함에도 또 엉터리 하루를 보내고 만다. 내 자신이 아둔하고, 수양(修養)에 게을러 어리석은 하루를 보내고 후회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를 반성하고, 또 교사로서 <사람다움>을 강조하나 나는 부끄러움 없는 삶을 살고 있는가 묻는다. 또한 동산의 언덕에서 저 자연과 세상을 보면서 시심(詩心)은 먼지를 털고 있는 지 살피는 자성(自省)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 스스로 먼저 수양이 되어야 눈이 맑고 가슴이 따스한 동산인(東山人)을 만나리라 생각해 온다. 서로를 존중하는 사제(師弟)로 만나 진실로 교학상장(敎學相長)하는 소중하고 즐거운 교실에서보람을 느끼며 지내고 싶다.
그런데, 부끄러움을 모르는 학생들이 적지 않다. 학생의 본분은 공부하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수업 시작 종이 울려도 교실에서 조용하지 않고, 수업 준비를 하지 않는 점이다. 즐거운 교실도 좋으나 공부하는 교실이 더욱 소중하다. 눈이 반짝이고 내일을 위해 묵묵히 수련하며 깊이를 더해 가는 동산인들을 많이 만나고 싶다. 책상에 표류(漂流)하고 잠을 즐겨서야 어찌 세계성을 갖으며,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겠는가.
고교 시절은 인생의 황금시간이요, 인생의 좌표가 달라지는 아주 귀한 소망의 시간이다. 동산인 모두는 그렇듯 귀한 시간 속에 있다. 인생의 첫걸음 봄에 있다. 그래서 가을의 수확을 위해 매진하고 땀을 흘려야 한다. 그리하면 뿌린 대로 걷어들일 뿐 아니라, 헐벗은 이웃을 사랑하고 실천할 수 있고 그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심성(心性)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아침에 신선한 햇살을 받으며 동산의 언덕에 오를 때 동산인은 즐거운 마음으로 충실한 하루를 소망해야 한다. 내일의 기대와 꿈을 가져야 한다. 친구와 만나 잡담이 아니라 보다 진지한 대화가 오갔으면 하고, 신의로 맺어져 깊은 우정을 나누며 폭넓은 시야로 새로운 지식과 세계를 만나 미래를 예비하는 것이다.
소위 n세대는 <보는 문화>에 익숙하여 깊이 있는 사려를 싫어하고, 정보가 홍수처럼 쏟아지는 속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여 판단력은 명쾌하지 못하며, 개성은 강하나 남을 잘 배려하거나 이해하려는 것이 부족하며, 외모는 크고 그럴 듯하나 신념이 약하여, 이 험한 세상을 잘 헤쳐나갈 지 걱정들이라고 한다. 그러한 면에서도 고교 시절은 수양의 시간으로 헛되이 해서는 아니 된다. 덧붙인다면 예의 바른 생활을 몸에 익히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마음을 갖추어, 어두운 곳은 물론 어느 곳을 가든지 소금과 빛이 될 소양을 쌓아야 한다. 시간은 아무런 예고 없이 가기만 한다. 진실로 시간을 아끼고 쪼개어 쓸지니, 동산인이여 분발하자, 소중한 때에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빛나는 시간을 보내어 내일이 기대되는 이들이 되자.
(ljow@unitel.co.kr)

 

문의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