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야기

중국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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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향과 비경


중국 수도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한 서안(西安)을 둘러보고 장가계와 원가계의 기묘한 경치를 보며, 야간열차를 이용해 도착한 계림의 이강을 지나며 산수를 즐기는 것은 중국 기행의 하이라이트인지 모른다.
서안은 약간 잿빛으로 덮여 있었는데, 그 관문이라 할 오랜 성곽 북문을 만난다. 만리장성보다 길이는 짧으나 그 크기와 견고함이 돋보였다. 서안에서 보았던 유적을 통해 이 곳이 천년의 고도(古都)를 잘 보여준다. 인근 비림(碑林 비의 숲)에서 왕희지와 안진경의 글씨를 육안으로 볼 수 있었던 것은 즐거움이었다. 사람이 많아 찬찬히 보기 어려운 것이 아쉬움이었다. 현장이 인도에 가서 가져온 불경을 모셨다는 대안탑, 온천이 있는 곳으로 당(唐)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으로 유명하고, 장개석의 서안 유폐 장소인 화청지(華淸池)를 보는 것은 역사의 감회를 주기에 족했다. 그리고 이 곳은 여산(廬山)아래로 조선 문인들이 절경이나 무능도원으로 그리던 곳이기도 하나, 여산을 여러 번 바라보았으나 설악산보다 나은 것도 아니라고 느꼈다. 혹시 조선시대 사대(事大)사상이 아니었을까.
서안의 압권은 진시황 능과 병마총이다. 중국을 통일하고 포로를 이용해 만든 이 능과 그 주변은 한나라 유방 때에 병마총이 거의 부셔졌고 지금은 어느 정도 복원되어있다. 그러나아직 그 발굴이 다 된 것도 아니어서 그 규모나 모습을 잘 알 수 없었고, 진시황의 능은 산이어서 계단을 오르는 것 자체가 능의 산책이었다. 과연 저 만리장성과 이 곳의 불가사의한 일들이 일어난 것은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복원되어 전시된 병마총 하나 하나마다 그 표정이 다르다니 그 노고를 가히 짐작할 수 있겠다. 중국 정부는 이곳을 크게 개발할 모양으로 개발이 한창이었다. 그 외에 이곳 저곳을 보았는데 규모가 큰 것을 빼고는 큰 감흥은 없었다.
장가계와 원가계는 그 절경이 규모에 있어서는 그랜드 캐년과 그 아름다움에 있어서는 금강산에 비견되는 곳으로 기암괴석의 연속은 탄성을 발하게 하였고, 그 관광 개발도 잘 하여 케이블카와 360여 미터의 고속 엘리베이터 등 유람 연계가 아주 잘 되어 있었다. 이 곳 관광지는 한국인이 주류를 이루고, 대체로 우리 돈이 통용되는 곳이었다. 겨울산의 아름다움이 이만하다면 절경의 뛰어남을 말하지 아니 할 수 없다. 황룡동굴의 거대한 규모와 아름다움은 잊지 못 할 것이고, 또한 인근의 호수와 노랫가락은 풍류를 보이기에 충분했다. 이곳에서 다가온 것중의 하나는 전체 유람의 연계와 자연보호는 우리가 본받을 일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그 근처의 식당이나 마을은 자연의 경관과는 거리가 컸다. 다리품이 들고 힘들었으나 자연의 오묘함과 그 미의 극치는 춘경에는 충분히 느끼리라고 보았다.
장가계역에서 계림으로 13시간 여 가는 야간 열차는 오랜만에 여행의 참맛을 주는 듯했다. 그 동안 여행의 피곤한 탓이거나 탐승에 지친 나머지, 자정경에 잠에 들고 새벽녘의 풍광을 보았으나 중국의 대부분의 자연이 대개 비슷한 것임을 생각하면 아쉬울 일은 아니었다.
계림의 아름다움은 이강을 배로 지나며 감상하는 것이나 장가계, 원가계에서 한껏 높아진 자연의 눈이 허용하기에 어려웠다. 그러나 1박 2일의 계림관광으로 그 곳을 다 말하기는 못하나, 비경이라 생각한다. 일주일간의 즐겁고 기억에 남는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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