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이야기

마 광수 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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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광수선생은 한 마디로 <재주꾼>이다. 

대학원 때의 지도 교수이기도 한 그를 이렇게 말하는 것은 실례일 수도 있으나
그에 대한 객관적 자세를 견지하려는 의도도 있다.
그를 처음 본 것은 4학년 때, 그가 홍대 국교과에서 연대 조교수로 오고서 이다.
그는 대학 선후배간이기도 해서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처세의 달인>이라고 느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의 방을 찾은 것으로 기억한다. 그는 그 때 매우 인간적이라고 느꼈다.
그 시기에 함께 이대 앞 카페에 자주 들렀던 기억이 난다.
그는 <윤 동주 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그의 논집들을 보면 그가 한방, 심리 등 여러 방면에 해박하고, 관심이 많았다.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는 고교 때부터 시를 써 왔으나 큰 시적 성과는 아직 없다. 그는 만날 때마다 돈을 벌어야 겠다는 말을 자주 했는데, 그 소산이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이다.
그가 교수의 신분으로 그러한 정도의 글을 ‘당위정’ 포장으로 하였다면
학문과 창작을 무난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했으리라.
그런데 그는 그 도를 지나쳐 <광마일기> <즐거운 사라>같은 그야말로
빨간책 수준의 글을 썼고 이를 대단하다고 착각한 모양이다. 그의 성적 불균형은
그가 말하듯 ‘어려서 먹지 못한’ 피골이 상접한 듯한 그의 육신과 관련을 맺으리라 생각하고 그가 페티시즘으로 흐른 것도 그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그의 학문이 폭넓은 발전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은 큰 아쉬움이다.
그의 천재성은 우리의 보수적 사회에서는 자랄 수 없는 것이다. 그럴 바에야
그는 양자 택일을 하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교수/수필가이냐, 작가냐.
그는 교수의 매력을 잘 알고 있었으리라. 교수가 쓴 글이기에 그것도 소위 일류대학의 교수가 쓴 ‘성론’이라는 사실도. 그러니 그는 전업작가로서의 길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결단력보다 소심한 마음이 더 크게 보인다.
그는 연락을 두절하고 사는 것 같다. 이도 그의 소심에서 기인한다. 그는 교수라는
직업에 매여있는, 그는 아이러니칼하게도 보수주의자인지도 모른다.
그는 <귀골>을 추구하고, <왕>이 되고 싶은 마음과 그 이면의 열등의식을 모두 가지고 있다.
이제라도 그는 학문의 본연으로 와서 문학사에 남을 글을 써야 하지 않을까.
그로 인해 손해를 본 이도 적지 않다는 것을 마광수 선생은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는 초심으로 가야 한다.
지금 처한 어려움은 그 정진 여하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그의 건강과 건필을 빈다. 그런데 최근 건강이 안 좋다고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다. 한 시대를 같이 느끼며 살아온 사람으로 쾌유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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